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제2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이하 당 제 11기 3중전회)를 계기로 등소평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추진한 실용주의정책은 농업, 공업, 국방 및 과학기술등 4개현대화와 더불어 대내적으로는 경제체제개혁 및
개혁의 중점과 경제 상황 등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제1기(1978.12-1984.9) 개혁 실행 단계
등소평 체제가 확립되어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기본방침을 채택함으로써 계급투쟁론 중심의 모택동주의가 퇴조하고 경제건설에 치중하는 실용주의 노선의 개혁개방정책이 농
경제위기 : 물가상승과 도시민의 생활수준하락
개혁․개방시기 중국의 경제개혁은 계획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주의경제내의 시장영역의 확대를 특징으로 한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초기개혁은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촌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개혁의 내용은 첫째, 모택동시기 생산주체
중국의 13억 인구에 매료되어 중국으로, 중국으로 새로운 ‘골드러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여기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기업이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지를 굳히려면, 복잡한 분석에 앞서 그들의 사상과 문화, 정치체제, 경제현황 등 거시적 환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모택동 사상을 비판하면서 등소평 체제는 4개현대화(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와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전환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와 정치제도 그리고 국내외정책에 있어서 모택동 시대와는 매우 다른 방향에서 중국적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제2의 혁명을 시
정치적 좌절과 재기를 경험하는데, 이로 말미암하 ‘3상3하 부도옹(三上三下 不倒翁) ‘3상3하’는 세 번의 실각과 세 번의 재기를 의미하며 ‘부도옹’은 오뚝이를 뜻함.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쌓아 올린 등소평의 경험과 리더십이 사후 중국의 대변
중국과 중화민족의 위상 회복 및 강화에 대한 분명하고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호가 전국민적 일체감 형성을 위한 국가의 선전이든, 실제로 중국 인민 대다수가 갖고 있는 열망이든, 중국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한 중국 정부의 전체 인민의 경제적 생활 수준 향상이라는
개혁함으로써 단계적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등소평의 이러한 대전제에 따라 내부논쟁을 통한 이론 정립 과정을 거쳐 92년 2월 12일 당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를 인준하였다. 92년 6월에는 강택민 총서기가 등소평의‘남순 강화’를 구체화하여‘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공식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 서구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중국은 개혁정책과 더불어 대외개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더욱 더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김정계, 정차근 공저, <중국정치론>참조
이와 더불어 개혁ㆍ개방 속에서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각
정책을 전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체제는 계속 추구하기로 하여, 검증을 거친 진리를 유일한 표준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진리라고 규정했다.
중국은 78년 중국공산당 제 11기 3중 전회에서 등소평 세력이 당내 다수파를 장악하면서 개혁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개혁세력은 경제발전